1.스테이블코인, 왜 주목받는가? – 개념과 글로벌 동향
최근 몇 년간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격이 급격히 변동하는 암호화폐와 달리, 특정 자산(달러·유로 같은 법정화폐, 금, 국채 등)에 가치를 연동해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려는 디지털 자산을 말한다. 쉽게 말해, “가상자산의 달러 예금 통장”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이 중요한 결제 및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USDT, USDC같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 대신 거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고 있으며, 해외송금·국제 결제에서도 빠르고 저렴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MiCA 규제안을 통해 발행자와 운용기관의 자본 요건·투명성·준비금 관리 기준을 마련했고, 미국도 연준이 공동으로 관련 가이드라인을 논의 중이다. 이제 논의의 무대는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다.

2.한국 금융당국의 시각 – 기회와 리스크 사이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최근 ‘가상자산 제도화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핵심 의제로 다뤘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투자자 보호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거래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행 주체가 해외 기업이다 보니 투자자가 손실을 입어도 보호 장치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작년 테라·루나 사태 이후 “안정적”이라고 불린 프로젝트조차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 만큼, 안정성과 투명성 검증이 필수적이다.
둘째, 결제 혁신 가능성이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안에서 발행된다면, 국내 전자상거래·해외송금·핀테크 산업에서 새로운 혁신이 가능하다. 카드 수수료보다 저렴하고, 송금 속도는 빠른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외 직구를 할 때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바로 결제하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고 수수료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다.
셋째,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성 우려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급속히 확산되면, 원화 수요가 줄고 통화정책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국내 시장에 진출할 경우, 한국은행이 통화 공급을 직접 통제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는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 논의와도 연결된다.
즉, 한국 금융당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금융혁신의 기회’로 보면서도 ‘시스템 리스크의 잠재적 위협’으로 동시에 인식하고 있다.
3.한국 금융시장, 스테이블코인으로 어떻게 바뀔까?
향후 한국 금융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세 가지 큰 변화가 예상된다.
① 투자·자산관리 방식의 변화
현재 한국 투자자들은 코스피·부동산·해외주식·가상자산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안에서 활성화된다면, “현금 대체 투자 포트폴리오”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을 들고 있느니, 원화 가치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기자금을 보관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의 MMF나 CMA 계좌와 비슷하지만, 더 유연한 글로벌 활용성을 갖게 된다.
② 결제·송금 시장 혁신
한국은 이미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가 일상화된 나라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이 결합하면 해외송금은 물론, 게임·K-콘텐츠 수출 시장에서도 새로운 결제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 예컨대 해외 팬이 K-팝 굿즈를 구매할 때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면, 환전 절차 없이 바로 정산이 가능하다. 이는 중소기업·창작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된다.
③ 정책적 과제와 사회적 파급효과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정착하려면 ▲발행 주체의 자본력 ▲준비금 투명성 ▲감독 당국의 규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디지털 자산 교육과 투자자 보호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대규모 피해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스테이블코인은 CBDC와의 관계를 통해 금융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만약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CBDC가 대중화되면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입지는 좁아질 수 있지만, 반대로 두 제도가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한다면 ‘다층적 디지털 화폐 생태계’가 가능해진다. 결국, 한국 금융시장은 전통 은행·핀테크·가상자산 기업이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펼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가상자산의 한 종류가 아니라, 금융의 새로운 인프라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디지털 금융 활용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제도화 여부가 곧 혁신의 속도를 좌우할 것이다. 다만, 혁신 뒤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스테이블코인이 진짜 게임체인저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또 다른 금융 불안을 낳을지는 제도 설계·투명성·투자자 신뢰에 달려 있다.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한국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의 일상까지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