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온라인에서 검색을 하고,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그 모든 행동이 더 이상 사소한 디지털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금보다 귀중한 자원이며, 어떤 기업에게는 매출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다. 21세기 경제의 중심이 ‘자본’에서 ‘데이터’로 이동하는 지금, 우리의 일상적 클릭 하나하나가 새로운 화폐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이른바 ‘데이터 화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돈이란 더 이상 지갑 속 종이와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디지털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순환되는 데이터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1. 데이터가 ‘금’이 되는 이유: 새로운 자산의 탄생
한 세기 전, 산업을 움직이던 것은 석유였다. 석유는 기계 문명을 돌리고, 국가 간 패권을 좌우하던 절대적 자원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산업을 움직이는 원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이다. 기업은 고객의 소비 패턴, 취향, 이동 경로, 심지어 수면 리듬까지 분석하여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시가총액 대부분은 유형 자산이 아니라 데이터, 알고리즘, 사용자 네트워크 같은 무형 자산에서 나온다.
데이터의 가치는 단순히 ‘많이 가지고 있다’는 양적 측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는 한 번 생성되면 무한히 복제되고,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치로 재탄생할 수 있는 ‘비소모성 자산’이다. 즉, 데이터는 소비될수록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용될수록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순환형 자산이다. 이런 점에서 데이터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적 부산물이 아니라, 금이나 석유보다 지속 가능하고 생산적인 ‘21세기의 화폐’라고 부를 만하다.
2. 개인이 주체가 되는 ‘데이터 주권 경제’
그러나 데이터가 새로운 자산이 된다는 사실은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그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플랫폼 기업들이 우리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구조에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데이터 가치가 급등하면서,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하고 수익화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데이터 주권’의 개념이다.
데이터 주권은 단순한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 내가 생성한 데이터의 권리를 인정받고, 이를 통제하며, 필요에 따라 거래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경제적 권리까지 포함한다. 유럽연합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은 이러한 개인 권리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한국에서도 ‘마이데이터’ 사업을 통해 금융과 의료, 교육 데이터를 개인이 직접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 건강 데이터를 보험사에 제공하면 맞춤형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소비 데이터를 분석해 리워드를 제공받는 형태의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개인이 데이터의 생산자이자 소유자로서 경제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이며, 과거 기업 중심의 데이터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 “나의 데이터가 나의 수익이 되는 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3.데이터가 돈이 되는 실제 메커니즘
그렇다면 데이터가 실제로 어떻게 ‘돈’이 되는가? 이는 단순히 광고를 통한 간접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그 자체가 거래되고 보상받는 시스템의 등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마켓플레이스가 대표적이다. ‘Ocean Protocol’, ‘Datum’ 등과 같은 플랫폼에서는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익명화한 상태로 기업이나 연구기관에 제공할 수 있으며, 그 대가로 암호화폐나 토큰을 받는다. 이처럼 데이터는 디지털 자산으로서 직접적인 거래와 보상이 가능한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기업이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할 경우, 일정 비율을 ‘데이터 배당금’ 형태로 개인에게 환원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특정 플랫폼이 내 검색 데이터나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얻는다면, 그 데이터의 제공자인 개인에게 일정 부분의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런 움직임은 데이터가 ‘공짜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가치 교환의 대상으로 인정받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AI 기업들도 데이터 확보를 위해 사용자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참여형 학습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사용자가 AI에게 질문하거나 피드백을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학습 데이터가 되고, 그 대가로 토큰이나 포인트를 받는 것이다. 즉, 인간의 참여와 행동이 곧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시대, “참여가 곧 수익”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4.데이터 화폐 시대의 기회와 윤리적 과제
데이터가 돈이 되는 시대는 분명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위험을 동반한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데이터 자산화는 기존 산업 구조를 혁신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데이터 분석가, AI 트레이너, 개인정보 중개인, 데이터 브로커 같은 직업군이 급격히 확대될 전망이며,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통해 디지털 배당을 받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소득 불균형 해소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는 데이터 거래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GDP의 새로운 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존재한다. 데이터의 상업화가 가속화될수록,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위협받고, 감시 자본주의의 그늘은 더욱 짙어진다. 또한 데이터의 가치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 고소득층이나 기술 접근성이 높은 사람들의 데이터가 더 비싸게 평가되며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데이터가 돈이 될수록, 데이터를 많이 제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외되는 구조가 형성될 위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향후 데이터 경제에서는 단순한 기술 발전뿐 아니라 데이터 윤리와 데이터 복지개념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데이터를 공정하게 거래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이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AI와 데이터 경제의 결합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신뢰 구조가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데이터, 새로운 부의 언어
우리가 매일 남기는 클릭과 검색, 메시지, 위치 기록은 이제 단순한 디지털 흔적이 아니라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자 미래의 화폐다. 데이터는 우리의 행동과 감정, 경험이 응축된 ‘디지털 자아’이며, 이 자아는 점점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경제적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부의 기준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그 데이터를 얼마나 지혜롭게 활용하는가”로 바뀔지도 모른다.
지폐와 동전이 사라지고, 신용카드조차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데이터는 새로운 형태의 돈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우리 각자의 클릭이 있다. 당신의 클릭은 누군가의 수익이 되고, 동시에 당신 자신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데이터 화폐 시대란, 우리의 일상이 곧 경제가 되는 시대이며, 그 흐름을 이해하는 자만이 미래의 부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